평화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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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6회 작성일 2024.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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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보호자들께서 거주시설 폐쇄를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오셨고, 집회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길바닥에서 고생하셨을텐데, 행여 건강 상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보호자님들께서 집회를 하시던 날, 저는 송구스럽게도 조이빌리지에 머물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입주민들은 드라이브도 다녀오고, 치료 프로그램도 받고, 지역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자기 방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로운 일상이었습니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상복을 입고 거친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드러내셔야 했을 보호자님들의 상황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평화로움이었습니다.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제가 30년 쯤 전에 군생활을 했던 곳은 이곳 조이빌리지에서도 별로 멀지 않은 임진강 GOP였습니다. 최전방 철책의 경계병이었습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대단히 살벌한 군생활을 한 것 같지만, 의외로 그곳은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고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위태로운 평화입니다. 그곳의 평화가 깨지면 온 나라의 평화가 끝장나는 곳이었습니다. 평화 혹은 전쟁이고, 그 중간은 없는 곳이었습니다.
조이빌리지 같은 곳을 사회복지 현장이라고 부릅니다. 현장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생각하면 이곳은 최전방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제가 경험컨대 실제로 이곳은 최전방이 맞습니다. 사회적 최약자 발달장애인들의 건강과 생존과 행복 여부가 이곳에서 매순간 결정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곳의 평화가 정말 중요하고 이 평화를 기를 쓰고 지켜내야 합니다. 최전방이 무너지면 모든 평화가 끝장납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방보다 후방에서의 물밑 싸움이 더 치열하고 버겁습니다.
집회에 나가 거친 구호를 외치셔야 했을 보호자님들도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방의 평화를 위해 후방에서의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계십니다. 전방이 뚫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엄중한 현실에 대한 인식 때문입니다. 제가 확신하건대 ‘내 아이는 조이빌리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보호자님은 한 분도 없습니다. 조이빌리지가 얼마나 어렵게 오늘날까지 오게 됐는지, 현재의 이 평화가 어떻게 이뤄낸 전리품인지를, 모든 보호자님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7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평화를 선물하시는 것 같은 이 말씀은 뜻밖에도 장차 제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박해에 관한 예고였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이 평화가 아니라, 혹독한 박해를 이겨낸 승리자의 전리품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임을 일깨워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조이빌리지는 참 평화롭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이 평화, 우리 모두가 끝까지 잘 지켜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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